수학, 과학, 영어 등 특정 교과 성적이 우수한 아이가 최고라는 부모들의 인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성적뿐 아니라 아이의 사회성과 표현력, 창의력, 상상력 등을 유심히 살펴보고 특화된 부분을 계발시키려는 현명한 부모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의 중심에는 하버드대학교 하워드 가드너 교수가 최초로 소개한 다중지능이론이 있다. 다중지능이론이 어떤 식으로 아이의 자존감을 회복시키는지 그 놀라운 효과를 '아이의 다중지능'(윤옥인 저, 지식너머 펴냄, 2014)에 실린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 수업 시간에 집중 못하던 초등학생 재우
수업시간에 늘 졸린 눈을 하고 좀처럼 집중하지 못하는 재우(가명)는 잘 씻지도 않고 머리도 감지 않아서 반 아이들의 기피 대상이다. 담임선생님이 재우를 붙들고 여러 번 당부를 해봐도 그다지 큰 변화는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재우의 담임선생님은 부모와 상담하기 위해 여러 차례 전화를 시도한 끝에 어머님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재우네 식구는 동생까지 총 네 명으로 단칸방에서 생활하고 있다. 부모님은 포장마차에서 밤 새워 일을 하기 때문에 아이에 대해 크게 관심을 두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게다가 어머님은 재우의 친엄마가 아니란다. 그래서인지 아침밥도 책가방도 챙겨줄 여력이 없다며 자신의 입장만을 토로했다. 그런 무관심과 방치는 아이를 매일 밤 집 주변을 배회하게 만들었고, 재우는 밤이 되면 24시간 마트를 기웃거리거나 새벽녘, 문을 연 교회의 의자 위에서 잠깐 눈을 붙인 뒤 학교로 등교했다고 한다.
이는 '아이의 다중지능'을 집필한 윤옥인 선생이 20년 전, 담임을 맡은 교실에서 만난 한 초등학생의 실제 이야기다. 불과 아홉 살밖에 되지 않은 재우의 상황은 얼핏 듣기만 해도 숨겨진 재능을 계발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환경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42년간 교단에서 다중지능이론을 기반으로 교육을 펼쳐온 윤옥인 선생은 이 아이를 통해서도 많은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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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장점을 살려주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신체-운동지능이 남들보다 뛰어난 경우라면 관련 지능을 살려주기 위해서 부모와 교사가 노력을 해줘야 한다. ⓒ베이비뉴스 |
재우를 변화시키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학습법은 모든 아이들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잠재돼 있는 강점을 끌어내기에 탁월하다는 다중지능이론을 기초로 한다. '기 살리기 프로젝트'와 '나도 선생님'이란 방식인데, 저자인 윤옥인 선생이 오랫동안 교실에서 실현해온 수업의 패러다임이다. 저자는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교사와 부모의 끊임없는 관찰과 인내라고 답한다. 이제 재우의 변화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담임선생님은 재우 어머님과 상담한 날, 이미 두 가지에 대한 약속을 받아뒀다. 하나는 잠은 무조건 집에서 자도록 하는 것, 둘째는 아침을 먹여 아이를 등교시키는 것이었다. 별다를 것 없는 나날이 이어지는 것 같았지만 재우의 강점지능을 발견한 이후로는 큰 변화가 뒤따랐다.
체육시간에 학교 행사로 계주 선수를 뽑을 때, 반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재우를 지목했다. 평소에는 아이들의 기피 대상이었던 재우이지만 달리기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또래친구들 모두 직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중지능이론으로 분류하자면 재우는 신체-운동지능이 남들보다 뛰어난 학생이었다. 결과적으로 재우는 운동회 당일, 날쌘 동작으로 극적인 역전 드라마를 펼치며 자신이 속한 '청군' 팀을 우승으로 이끈 영웅이 됐다.
'기 살리기 프로젝트'는 체육대회 이후 교장실에서 이뤄졌다. 담임선생님에게 미리 이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을 들은 교장선생님은 아이를 크게 칭찬하며 올림픽 시상식 때처럼 목에 메달을 걸어줬고, 사인을 부탁하기도 했다. 이때 아이는 지금껏 보여주지 못한 해맑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날 이후 재우는 친구들과의 관계, 수업시간의 태도가 달라졌고, 외모 또한 말끔해져갔다. 수업시간 중 가장 흥미를 갖는 과목 역시 체육시간이었다. '나도 선생님'이란 역할을 통해 체육 이론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게 하자 재우는 책을 읽는 목소리에도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주변 친구들은 이제 더 이상 재우의 발표 실력이나 성적을 문제 삼지 않았고, 재우 또한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하거나 의기소침한 태도를 보이는 순간들이 점차 줄어들었다.
이처럼 교과 성적이 상위권으로 올라가지 않더라도 아이의 자존감은 다른 부분에서 충분히 채워질 수 있다. 본인이 잘할 수 있는 영역과 재능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직면하는 많은 문제에 대해 자신감을 갖게 된다. 이를 통해 아이는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고, 일상생활 속 다양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스스로 찾아가게 되는 것이다.
◇ 모든 아이는 자신만의 강점이 있다
기본적으로 다중지능이론은 사람의 지능은 하나가 아닌 여러 요인들로 구성돼 있다고 말한다. 또한 각 지능은 고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충분히 변화할 수 있고 교육을 통해 계발될 여지가 충분하다고 규정한다. 현재까지는 명백히 구분되는 지능의 종류를 여덟 가지로 구분하고 있지만, 두뇌연구를 통해 새로운 기능이 밝혀지면 그 종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낱말의 소리나 의미, 언어와 관련된 '언어지능' ▲수와 셈, 논리적 사고를 하는 '논리·수학지능 ▲이미지와 시공간적 세계와 관련된 '공간지능' ▲표정, 움직임 등 몸으로 하는 일과 연결된 '신체·운동지능' ▲음악과 소리와 관련된 '음악지능' ▲타인과 교류하고 그들을 이해하는 '대인관계지능', 자신을 이해하고, 조절하는 '자기이해지능' ▲자연에 대한 관심이 높고 유형을 규정하고 분류하는 능력이 탁월한 '자연친화지능' 등의 여덟 가지 지능은 특정 지능의 우월성을 가릴 수 없을 만큼 모두 다 소중하고 특별하다.
다중지능 교육의 효과를 입증할 만한 사례는 미국, 유럽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아시아권 나라에서도 1990년대 이후 다중지능 교육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움직임이 증가하고 있는데, 국내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실시한 다중지능계발 커리큘럼 역시 아이들과 학부모로부터 만족스런 평가를 받아왔다. 조기교육, 자기주도학습, 창의교육, 리더십 기르기 등의 목표를 자연스럽게 이룩할 수 있게 한다는 이유였다. '주입식 교육'이 아닌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는 교육'이 주목을 받는 시대인 만큼 부모들도 성적보다 아이들의 강점을 발견하는 데 초점을 맞추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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